2010/01/12 12:29

오웨니즘.


 요즘 조합운동 관련해서 말이 많기는 한데, 정작 지금의 정규직 고용 시스템이나 노동조합제 같은 것의 뿌리인 오웨니즘에 대해서는 좀 알아보고들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저게 오웬이라는 19세기 영국양반에게서 유래한 이름인데, 당대의 막장도 탑을 달리는 방적공장을 경영하면서 노동자들을 교육시키고, 근로나 생활 여건을 개선하며, 또한 생활조합을 결성하게 하는 등 이른바 인간적 경영, 다르게 말하면 가부장적 경영을 했고, 이로서 꽤나 견실한 기업경영을 이루어냈기 때문에 20세기 초반에 하나의 경영적 사조 비슷하게 대접받은 그런 개념입죠.

 이것의 영향이 작은게 아니어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포드의 공장도, 단순히 작업공정의 세분화와 능률화만 한게 아닌, 급여를 다른 회사의 2배씩 주는 꽤 강한 후생을 갖추게 된것도(그래봤자 이직률도 2배였다지만) 그런 배경이 있는 거고, 또 이게 일본에 건너와서는 종신고용제의 한 기초를 이루게 되는(물론 이것 외에 봉건제적 전통이 있지만) 요소가 되었죠. 아마 일철 관련해서 관심있는 사람은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고토 신페이가, 바로 이런 오웨니즘에 영향을 받아 일본국철의 종신고용이나 후생제도 전반을 구축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오웨니즘이 존재한 이유는 인도주의적인, 또는 경영자 개인의 선의에 의존해서 나타난 것도 있고, 이념적으로는 일종의 계몽주의적인 영향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합니다. 바로 기능공의 확보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죠. 당대의 노동시장은 해고가 자유로웠고, 노동조건이 열악했지만, 또한 한편으로 기능공의 확보가 그만큼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니맨이라 불리는 용어가 나온 것도, 일인분의 기능을 가진 기능공들은, 한 직장에 안주하면서 일하기 보다는, 더 나은 급여조건을 찾아서 이리저리 이직하는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었죠. 산업혁명으로 생산이 장인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지만, 완전한 기능공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시작한 건 20세기 후반에 컴퓨터화가 이루어지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게 된거고, 20세기에는 아직 택도 없는 이야기에 다름아닌 사항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런 기능공 잡아두기를 위해서 5년간 이직 및 사직 금지 조항 같은 걸 두던 메이지 대의 일본은, 후일 아예 오웨니즘에 영향을 받으면서, 아예 이직을 통한 급여인상을 호봉제를 통해 보전해 주고, 장기적인 근속을 묵시적으로 보증해 주는 이른바 종신고용관행을 만들어 내게 되죠. 물론 이게 나중에가면서 명문화 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종신고용계약이 생기게 됩니다. 영미권에서는 이런 식의 종신고용관행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장기계약과 후생복지제도, 그리고 조합운동이 생겨나게 되었죠.

 다만, 이런 오웨니즘적 노무관리라는게 생각만큼 단단한 시스템은 아니고, 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만큼 바람직한 형태로 이루어진건 아닙니다. 종신고용관행이 개인의 이직이나 사퇴를 계약으로 금지하던 조항에서 출발하던 것과 비슷하게, 오웨니즘 공장들 역시 이런 통제적 요소가 상당히 존재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허쉬 사 이야기랑 비슷한 케이스로 아는 곳이, 철도차량회사이자 일종의 제3자여객운송업(철도회사의 열차에 자사의 객차를 연결해서 영업하는 방식)을 하던 미국의 풀먼(Pullman) 사가 있습니다. 실제 남북전쟁 이후에 급증한 흑인 노동력을 여객열차 승무원으로 대거 고용해 사회적인 공헌을 제법 한 회사고(이게 이후 미국 여객철도에서는 관행이 되다시피), 또 자사의 차량공작창 인근에 아예 신도시를 건립해서 자사의 근로자들을 아예 회사 인근에 집단 거주시키는 식으로 후생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거의 풀먼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하죠. 문제는, 직원들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다는 것 뿐이죠(먼산). 나중에 이 문제 외에 후생 문제나 구조조정 문제(해고당하면 또 살던 곳에서 퇴거당했다던가) 같은게 얽히면서 풀먼사는 공장 점거 등에 이르는 심각한 분쟁을 겪게 되죠.

 오웨니즘 노무관리라는 것은 또, 노사간에 어떤 아그레망 같은 걸로 구속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측의 일방적인 권리유보로서 성립되는 그런 시스템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즉, 사측 일방의 사정변경으로 얼마든지 대량해고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죠. 물론, 묵시적인 룰 같은게 없지는 않지만, 어디까지나 사측의 은사로서 성립하는 그런 체제라는 거죠. 그래서 오웨니즘을 번역할 때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가부장적 관리라고 보통 번역을 합니다.

 문제는, 인간들이 이런 묵시적이고 어떤 보증이 없는 체제를 쉽게 감내할 수 있냐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런 요소에 조금이라도 항거하려 든다면(즉 불만을 말하거나, 조직 내에서 불화가 있거나, 조합 활동을 하거나), 가차없이 즉시 해고를 당하는게 일반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지금처럼 고충처리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려운 그런 체제였다는 거죠. 이부분을 우습게 알기 쉬운데, 아무리 삐까번쩍한 후생제도가 있다고 해도 고유의 고충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뭐, 당장에 공무원들이 안정적인 직장으로 요즘 선망받지만, 일선 공무원들이 겪는 온갖 고난들, 미친 민원인, 직무사고, 무의미한 동원, 오만가지 강제할당제, 불투명한 인사 등등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시선을 두지 않는 것과 비슷하죠. 솔까말, 이런 걸 모르는 룸펜들이 극우나 극좌에 많이들 있죠. 그러니 쉽게 까고 든달까요.

 또, 사람은 기본적으로 기본적인 안전과 위생욕구가 어느정도 충족되면, 안정을 바라게 됩니다. 허즈버그 이론이었던가 뭐 그런데 잘 나오는 이야기죠. 이건 먼 고대부터 이어지는 건데, 봉건제도 하에서 녹봉이나 급여, 훈장 보다 영지나 수조권에 목을 매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는 거죠. 위와 같은 일방적인 해고권 유보와 편의적인 후생제공은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는 것이었고, 실제로 종종 경영위기가 도래하면 순식간에 대량해고가 터지던게 미국의 환경이었습니다. 또 당장에 장시간 근로나 안전문제 같은게 상존하던 분위기도 존재를 했죠(풀먼같은 경우도 30~40시간이 넘는 시간을 꼼짝없이 한 열차에 근로하게 되어 있었죠). 그러다보니, 노동운동 역시 이런 것의 아그레망, 즉 협약으로의 명시를 요구하는 형태가 상당히 강해집니다. 일본의 경우도 2차대전 후에 이런 경향이 매우 강렬해져서, 관행이 일종의 제도로서 전환이 된거죠.

 이런 경향은 분명히 당대의 세계적 분위기에 얽매이는 건 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전쟁 이후의 빠른 경기수축의 영향으로 조합운동이 강경해지는 점도 있고, 또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 국가들이 큰 내홍을 겪기도 하죠. 세계적으로는 1968년의 혁명같은 것도 한 예가 될만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거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1987년을 이런 기점으로 보기도 합니다. 다만, 언제나 사람의 욕심이나 사정은 변하게 마련이고, 거기에 따라서 제도 역시 묵시적인 것에서 명시적인 것으로, 또 도덕에서 규범으로 움직이게 마련입니다(역으로 사문화 되는 것들도 나오지만). 오웨니즘이 무너진 것 역시, 단순히 뽐뿌받은 강성노조의 삽질만이 아니라, 이런 흐름을 탄 결과라는 점이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겠습니다. 

 쓰다보니 좀 횡설수설이 된 거 같지만, 하여간 서양쪽 역사론에서 자주 보이는 유일한 결정원인이 있을거라는 관점은 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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